돛단배 띄워서 박수받기
사람은 뭘 위해 사는 걸까. 잠자리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서 대충 씻고, 북적이는 대중교통에 몸 구겨넣고, 8시간 길면 12시간 버텨내고, 진 빠진 채로 집에 와서 다음 날 또 출근하기 위해 다시 잠자리에 몸 구겨넣기 위해 사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21세기에는 즐길 것들이 너무 많다. 인터넷과 AI는 취미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숏폼과 알고리즘은 ‘초개인’의 시대를 열었다.
나는 백엔드 엔지니어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작다. 그 전엔 IT 인프라 하드웨어를 만졌고, 그보다 더 전엔 호스팅 서비스를 직접 운영했다. 그게 서비스 데뷔는 처음이였다. 그 뒤로 큰 조직에도 있었고, 작은 회사에도 있었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시절도 있었다. 커리어의 생김새는 꽤 다양했지만 결국은 IT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나한테 ‘컴퓨터만 붙들고 살면 재미없지 않냐’ 고 물으면 좀 억울하다. 나는 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이 꽤 진지한 수준으로 있다. 술담배 대신 그쪽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다. 그중 하나가 사진이고. 얼마나 진지하게 했냐면, 어느 해엔가 국제단체 전속 사진기사 오퍼를 받은 적도 있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지부에서 온 제안이였다 ㅋㅋ) 그때 수락했다면, 사진으로 커리어를 했으면, 지금쯤 꼬장꼬장한 상업작가가 됐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15년 넘게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단체전에 액자도 걸었고, 이래저래 도움 받은 것도 많았다. 매달 어도비 구독료가 나가고, 장비를 사고팔고 또 사고팔고. IT로 쌓인 걸 ‘정답이 없는 것들’로 풀어내는 방식이 나한테는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진을 꽤 오래 했지만 필름만큼은 선을 그었었다. 필름은 돈 많은 사람들 취미라고 생각했고, 굳이 그 불편함을 돈 주고 살 이유가 없었다. 디지털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2025년 들어서 뭔가 이상하기 시작했다. SNS에서,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필름이 심상치 않았다. 유행이라는 수준을 넘어서 물결이 되고 있었다. 결국 나도 편승했다. 적당한 RF 카메라를 하나 구했고, 그렇게 나도 조용히 필며들었다. 필며들었다는 게 그냥 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충무로에 현상하러 들락거리고, 올드 렌즈에 대한 장비질이 더 심해졌다. 그리고 장비질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중고 매물 탐색으로 이어진다.
개인 거래 플랫폼은 요즘 참 잘 돼 있다. 알고리즘이 키워드를 추천해주고, 내 주변 사람만 골라볼 수 있고, 중고거래인데 신용거래까지 된다. 초개인의 시대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충무로, 남대문 중고 카메라 샵들은 그 흐름 밖에 있었다. 알고리즘도 없고, 통합도 없고, 매장 자사몰을 하나하나 직접 들어가야 했다. 나는 그게 자꾸 걸렸다. 초개인의 시대에, 검색 포털들은 왜 아직도 이 동네엔 없는 걸까. 탭을 열 개 열어놓고 비교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거 내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30분을 버티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프로토타이핑을 시작했다. 중요한 건, 이 단계에서 코드를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거다. 기술을 어떻게 할지, 화면을 어떻게 보여줄지 같은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AI한테 ‘이런 걸 만들고 싶다’는 맥락만 넘겼다.
30분 후에 작동하는 무언가가 생겼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처음 입력했다. 결과가 떴다. 다소 엉뚱한 것들도 섞여 있었고, 글자가 깨지는 경우도 있었다. 근데 결과가 나온다는 것, 가격이 표시된다는 것, 샵별로 필터링이 된다는 것. 일단 되긴 된다는 느낌이 왔다. 그 순간 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나처럼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빈티지 카메라 거래는 온라인보다 매장 방문이 더 활발한 편이다. 자사몰을 모아서 보여준다는 게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수요가 있긴 한 걸까. 그 물음에 답을 못 찾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의미가 없었다.
자주 드나드는 커뮤니티에 투표를 올렸다. 제목은 단순했다. ‘중고샵 모아보기 있으면 쓸 거냐.’

결과가 나왔다.
101명 참여, 96표 긍정, 5표 부정. 투표시간 3시간.
숫자보다 댓글이 더 강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곳은 근거 없는 아이디어 들고 오면 그냥 묻히고. 조금만 수틀리면 바로 비난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댓글이 이랬다. ‘아이디어 좋은데??’, ‘제발 만들어 주라 미리 개추다’, ‘제발 만들어 주세요 ㅠㅠ’, ‘개추 500배’, ‘일본은 그런 모아보기 사이트 있는 거 보고 부러웠는데 꼭 만들어지면 좋겠다’, ‘중고매물 사이트는 원래 안 들어가봤는데 저거 있으면 한번에 보이니 들어가볼듯.’ 서비스에 아무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이 자기 돈 낼 것처럼 반응한다는 게, 나한테는 그 어떤 시장조사 보고서보다 설득력 있었다.
나중에 이 과정을 돌아보다가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이라는 책에서 세렌디피티라는 내용을 읽은게 생각났다. 목적한 것을 찾다가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하는 현상. 책에서는 중심적 관심보다 오히려 주변적 관심이 더 활발하게 작용한다고 했는데, 릴리즈서치가 딱 그 경우였다. ‘불편한 걸 어떻게 편하게 만들 것인가’ 같은 그럴싸한 출발점이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렌즈 사고 싶은데 탭 열기 귀찮았던 나, 충무로 샵들을 하나하나 들어가기 번거로웠던 나. 그 변두리의 귀찮음에서 시작됐다.
누군가는 이 불편함을 이미 오래 겪고 있었을 거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오래. 근데 지켜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문제로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시야 한가운데 있는 것이 제일 잘 보일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는데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불편함도 그렇다. 오래 겪다 보면 그게 불편한 건지도 모르고 그냥 살게 된다.
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책상에 앉은 게 아니었다. 그냥 매물 찾다가 짜증이 났고, 그 짜증이 30분짜리 프로토타입이 됐다. 책에서는 목적한 과제를 너무 오래 직시하면 오히려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 방해받는다고 했다. 잠시 관심을 끄고 주변부로 옮겨둘 때, 세렌디피티가 쉽게 일어나는 맥락이 만들어진다고. 나는 그걸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딱 그 순서였다. 풀려고 달려든 게 아니라, 그냥 살다가 걸린 거였으니까.
생각해보면 IT 커리어에서 봐온 많은 서비스들도 비슷했다. 거창한 비전을 세우고 시작한 것들보다, 만든 사람 본인이 실제로 불편해서 긁적거리다 만들어진 것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이 사용자이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거다. 수요조사 보고서보다 자기 자신의 짜증이 더 정확한 나침반이 되는 순간이 있다.
우연을 가장한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부에 오래 쌓여있던 귀찮음이 어느 날 중심으로 튀어나온 것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뭔가를 바꾸겠다는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수요 조사가 끝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소스코드를 열어봤다. AI가 만들어준 프로토타입은 파이썬에 Next.js 조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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